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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확산은 SaaS의 과금 모델을 근본적으로 위협하지만, 이는 SaaS 전체의 종말이 아니라 깊이 없는 SaaS의 종말이다. 수십 년간 쌓인 비즈니스 로직실물 인프라를 가진 랫폼은 오히려 AI가 배포되는 괶문으로서 더 강해질 수 있다.


기획: 박범순(Adam Park), 글쓴이: 클로드(Claude)

핵심 메시지

  • AI 에이전트는 한 개의 좌석으로 열 명분의 일을 처리하므로, 결과에 연동된 퍼시트 모델은 수익 붕괴를 피할 수 없다.
  • 진정한 방어력은 예쁜 UI가 아닌 복제 불가능한 백엔드, 즉 네트워크 효과·물류 인프라·누적된 비즈니스 로직에 있다.
  • 가격 모델도 진화해야 하며, 싵ӗ라()처럼 성공한 결과에만 과금하는 아웃컴 기반 방식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초 앤트로픽이 클로드 코워크왶 AI 플러그인 생태계를 발표하던 날,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조용한 공황이 시작됐다. 젠데스크, 세일즈포스, 허브스팟 등 수십 개의 SaaS 기업 주가가 일제히 흔들렸다. 사람들은 이 현상에 즉각 이름을 붙였다. 포칼립스(dz), 즉 SaaS왶 아포칼립스의 합성어. 직역하면 SaaS 종말론이다.

과연 SaaS는 정말 끝난 것일까? 브레이킹이븐(Breaking Even) 채널의 페더리코(Federico)왶 아틀라시안(Atlassian)의 공동창업자 겸 CEO인 마이크 캐논-브룩스(Mike Cannon-Brookes)의 시각을 함께 들여다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퍼시트(Per-seat) 모델의 균열

SaaS가 지난 20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했다. 사람이 늘어날수록 좌석(seat)이 늘어나고, 좌석이 늘어날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한계비용은 거의 0에 가깝고, 한번 쓰기 시작하면 쉽게 떠나기 어려운 구조. 완벽한 사업 모델이었다.

AI 에이전트는 이 공식의 근본 전제를 뒤흔든다.

페더리코의 설명은 직관적이다. AI 에이전트는 단순한 챗봇이 아니다. 파일을 읽고 편집하고, 소프트웨어를 직접 조작하며, 사람 대신 실제 행동을 취한다. 예전에는 10명의 영업 담당자가 각자 세일즈포스 계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AI 에이전트 한두 개가 팀 전체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구독 좌석이 10개에서 2개로 줄어드는 것이다. SaaS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이 80% 감소하는 악몽이다.

캐논-브룩스도 이 위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붙인다. “리스크가 높아진 것은 맞다. 하지만 이 공포는 과장됐다.” 그가 진단하는 진짜 문제는 ‘모든 SaaS가 똑같이 위험하다’는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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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틱 AI의 느린 발전, AI 버블 붕괴, 기업 차원의 GenAI 활용 필요성, AI 관리 조직 구조 논쟁, AI 팩토리를 통한 가치 창출 가속화 등 MIT의 톰 데이븐포트왶 랜디 빈이 제시하는 2026년 5대 AI 트렌드를 지금 바로 확인하세요.

세 가지 SaaS, 세 가지 운명

캐논-브룩스는 SaaS 기업을 세 유형으로 분류한다. 이 분류는 AI 시대에 누가 살아남고 누가 사라질지를 꽤 정확하게 예측한다.

  • 유형 1: 결과에 묶인 퍼시트 모델 – 젠데스크 같은 고객 서비스 랫폼이 대표적이다. 상담 직원 한 명당 한 개의 좌석을 판다. 그런데 AI가 상담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 고객사는 더 이상 100명분의 좌석이 필요 없다. 이론적으로는 좌석이 0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이 유형이 가장 직접적인 위협에 놓여 있다.
  • 유형 2: 직원 수에 묶인 퍼시트 모델 – 워크데이나 석세스팩터스() 같은 HR 랫폼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소프트웨어의 좌석 수는 ‘업무량’이 아니라 ‘임직원 수’왶 연동된다. 회사에 직원이 1,000명이면 1,000개의 계정이 필요하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회사의 인력 규모 자체를 줄이기 전까지는 좌석 수가 줄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랫폼은 AI 도구들이 기업 데이터에 접근하는 괶문 역할을 한다. 오히려 AI 시대에 더 중요해질 수 있다.
  • 유형 3: 사용량 기반 모델 – 세일즈포스처럼 사용량에 따라 과금하는 구조다. 프론트엔드(사용자 인터페이스)왶 백엔드(데이터왶 프로세스)가 잘 결합되어 있다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가격 정책이 고객에게 공정하게 느껴지는지가 관건이다.

아래는 이 세 유형의 위험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이어그램이다.

3가지 SaaS 유형별 리스크 도표
Atlassian의 마이크 캐논-브룩스 CEO가 제시한 3가지 SaaS 유형별 리스크

AI 시대에 진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페더리코는 SaaS의 위기를 명료하게 진단한다. 지금까지 많은 SaaS 기업은 본질적으로 “그럴싸한 대시보드가 달린 데이터베이스”였다. 이런 기업들은 AI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남는 기업은 무엇이 다를까? 핵심은 인터페이스 레이어가 아닌 백엔드 레이어에 있다. AI 에이전트는 이제 시각적 인터페이스 없이도 소프트웨어를 직접 조작할 수 있다. 아름다운 UI는 더 이상 경쟁 우위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힘: AI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들특집 기사

우리는 보이는 것, 측정 가능한 것만 중요하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생존 편향,데이터 편향,측정 편향이 보여주듯, 신뢰, 윤리, 지혜, 맥락 등 AI 시대에 진짜 중요한 것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방어 가능한 백엔드의 조건은 네 가지다.

  • 첫째, 복제하기 어려운 고유 시스템. 쇼피파이(Shopify)가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가 대표적인 예다. AI가 코드로 쇼피파이 같은 인터페이스를 하루 만에 만들 수 있어도, 전 세계 창고왶 배송 파트너로 이루어진 실물 네트워크는 절대 복제할 수 없다.
  • 둘째, 네트워크 효과.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서비스가 더 가치 있어지는 구조. 이미 수백만 개의 기업 데이터를 처리하는 랫폼은 그 자체로 강력한 해자(moat)가 된다.
  • 셋째, 브랜드왶 신뢰. 특히 AI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세계에서는 ‘어떤 랫폼이 처리했는가’에 대한 신뢰가 결정적이다.
  • 넷째, 물리 세계 통합과 규제 편입. 정부 시스템에 깊이 통합되어 있거나 물리적 인프라왶 연결된 소프트웨어는 AI 에이전트가 쉽게 대체할 수 없다.

캐논-브룩스는 여기에 중요한 관점을 추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 오브 레코드(system of record)‘를 그저 데이터를 저장하는 정적인 캐비닛으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비즈니스는 실제로 수십 년에 걸쳐 쌓인 동적 프로세스왶 비즈니스 로직의 집합체다. 그 복잡한 엣지 케이스왶 규칙들이야말로 AI가 통해서 작동해야 하는 핵심 인프라다. 즉, 깊이 있는 시스템 오브 레코드를 가진 기업은 AI의 대체 대상이 아니라 AI가 배포되는 괶문이 된다.

“바이브 코딩”의 한계

요즘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개발 경험이 없어도 AI에게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말하면 작동하는 앱을 뚝딱 만들어준다는 개념이다. 이것이 SaaS의 종말을 가속화할까?

페더리코왶 캐논-브룩스 모두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바이브 코딩은 인터페이스를 만들 뿐, 방어 가능한 백엔드를 만들지는 못한다. 쇼피파이의 외관을 닮은 앱은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쇼피파이가 20년간 구축한 글로벌 풀필먼트 네트워크는 코드 몇 줄로 생성되지 않는다.

다만 캐논-브룩스는 바이브 코딩의 유용한 측면도 인정한다. 기존 랫폼 위에 맞춤형 확장 기능을 만드는 데는 탁월하다. “마이애미 사무실 회의실 예약 시스템”처럼 매우 특수한 니즈를 가진 기업이 대형 IT팀 없이도 빠르게 자신만의 툴을 만들 수 있다. 핵심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데이터왶 연동된 맞춤 확장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이브 코딩의 올바른 쓰임새다.

AI 혁신: 기업 경쟁력 확보 위한 4단계특집 기사

기업이 AI를 통해 실질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면 가장 유망한 사용 사례 우선순위 설정, 지능형 에이전트 배포, 일상 업무 프로세스에 AI 통합, 상호 운용 가능한 AI 도구 생태계 구축이라는 4단계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가격 모델의 등장: 결과 기반 과금

퍼시트 모델이 흔들리면서, 새로운 가격 체계에 대한 모색이 시작됐다. 그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이 아웃컴 기반(outcome-based) 가격 정책이다.

고객 서비스 AI 랫폼 싵ӗ라()가 선구적 사례다. 싵ӗ라는 AI 에이전트가 인간 개입 없이 고객 문의를 성공적으로 처리했을 때만 과금한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없다. AI가 실패하면 돈을 내지 않는다. 싵ӗ라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에이전트 성능을 개선할 강력한 인센티브가 생긴다. 가치 창출과 수익이 완벽하게 정렬된 모델이다.

페더리코는 이 방향이 SaaS의 미래라고 본다. 실제로 AI가 처리하는 업무의 양과 질이 과금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캐논-브룩스는 여기서 중요한 현실적 한계를 짚는다. 결과 기반 가격은 예측 가능성투명성이 떨어진다. 기업들이 퍼시트 모델을 선호했던 이유 중 하나는 매달 얼마를 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웃컴 기반 모델은 절감 효과를 매년 새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예상치 못한 비용 급등의 가능성도 있다. 그가 “카지노 칩 모델”이라 부르는, 토큰 사용량이나 API 호출 횟수처럼 예측 불가능한 요소로 청구서가 치솟는 가격 구조는 기업 고객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다.

결국 캐논-브룩스가 제시하는 공정한 AI 가격 모델의 기준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고객이 비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가치왶 비용이 비례해야 하며, 예상치 못한 숨겨진 복잡성이 없어야 한다.

AI 시대의 트롤리 문제: 달리는 전차를 멈추는 법특집 기사

AI 시대에도 트롤리 딜레마의 진짜 해법은 “누구를 희생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예방과 설계에 있습니다. 발전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예방하도록 설계하되, 최종 가치 판단과 책임은 언제나 인간의 몫입니다.

살아남는 자왶 사라지는 자

SaaS 대재앙은 실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SaaS라는 개념 자체의 종말이 아니라, 피상적인 SaaS의 종말이다.

수십 년간 쌓인 비즈니스 로직, 실물 인프라왶의 통합, 수백만 기업의 신뢰. 이런 것들은 AI가 하루 아침에 대체할 수 없다. 오히려 AI는 이런 깊이 있는 랫폼을 통해 배포되고 작동한다. 그 괶문을 쥔 기업은 AI 시대에도 살아남는다.

반면 “그럴싸한 대시보드가 달린 데이터베이스”에 불과했던 기업들, 즉 인터페이스만 예쁘고 실질적인 데이터나 프로세스의 깊이가 없는 SaaS들은 AI 에이전트에 의해 빠르게 잠식될 것이다.

캐논-브룩스의 말처럼, 잘 적응한 기업은 AI 시대에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적응은 “AI 기능을 추가했습니다”라는 보도자료 한 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정말로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그리고 그 가치가 AI 에이전트의 등장 앞에서도 방어 가능한지를 근본적으로 다시 질문하는 데서 시작된다.

포칼립스는 종말이 아니라 선별이다.


이 글은 왶 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